노을길

노인 섬망 치료, 약은 언제 쓰고 무엇을 끊어야 할까

15분 읽기

부모님이 갑자기 달라지셨습니다.

밤새 헛것을 보시거나, 링거 줄을 뽑으려 하시죠. 알아보던 가족 얼굴을 낯설어하실 때도 있습니다. “진정시키는 약이라도 써 달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순서가 있습니다. 섬망 치료의 중심은 약이 아닙니다. 원인 찾기와 환경 조정이 먼저이고, 약은 그 뒤에 짧게 쓰는 보조 수단입니다.

섬망을 낫게 하는 ’전용 약’이 있나요?

섬망만을 위해 허가된 치료제는 없습니다. 섬망은 감염·탈수·약물 같은 몸의 문제가 뇌에 드러난 신호입니다. 그래서 치료는 원인 교정이 먼저입니다. 항정신병약은 증상을 잠시 누그러뜨리는 용도로 쓰입니다.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은 섬망을 갑자기 생기는 의식·주의력의 혼란으로 설명합니다. 몇 시간에서 며칠 사이에 시작됩니다. 하루 중에도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죠.

얼마나 흔할까요? 영국 NICE 섬망 지침 자료를 보면 내과 병동 입원 환자의 20-30%에서 섬망이 생깁니다. 수술 환자는 10-50%로 범위가 더 넓습니다.

원인으로 흔히 확인되는 것은 이렇습니다.

원인이 하나가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의료진이 혈액·소변 검사와 복용 약 확인을 함께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약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의외로 이쪽 근거가 더 탄탄합니다.

약보다 먼저 효과가 확인된 방법은 무엇인가요?

가장 근거가 많은 것은 ’다중요소 중재’입니다. 방향감각 돕기, 수면 지키기, 안경·보청기 착용, 수분 보충, 조기 보행을 묶어서 합니다. 대규모 분석에서 섬망 발생 위험을 약 31% 낮췄습니다.

대표 연구는 1999년 미국 예일대 연구팀의 입원 노인 섬망 예방 연구입니다. 70세 이상 입원 환자 852명을 비교했습니다. 섬망 발생률은 일반 진료군 15.0%, 중재군 9.9%였습니다.

약 하나 쓰지 않은 결과입니다. 2016년 코크란 체계적 문헌고찰도 같은 방향이었습니다. 다중요소 중재의 상대위험은 0.69로 분석됐습니다.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원(NICE)은 섬망 위험이 있는 입원 환자에게 입원 24시간 이내 위험요인을 평가하고, 개인에 맞춘 다중요소 중재를 제공하라고 권고합니다.

가족이 병실에서 바로 할 수 있는 것

영역구체적 방법노리는 효과
방향감각큰 시계·달력 두기, 날짜·장소 자주 말씀드리기혼란 완화
감각평소 쓰던 안경·보청기 챙겨 드리기착각·오해 줄이기
수면밤엔 조명 낮추기, 낮엔 커튼 열기낮밤 리듬 회복
수분·식사물·식사량 확인해 의료진에 알리기탈수 예방
움직임의료진 허락 범위에서 하루 2-3회 걷기근력·인지 유지
익숙함가족사진, 낯익은 목소리, 짧은 방문불안 감소

어렵게 들리지만 대부분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해도 안정이 안 될 때입니다.

항정신병약은 언제, 얼마나 쓰나요?

본인이나 주변이 다칠 만큼 흥분하고, 말로 진정이 안 될 때 고려합니다. 할로페리돌 같은 항정신병약(환각·흥분을 가라앉히는 약)을 가장 낮은 용량으로 씁니다. 기간은 보통 1주 이내입니다. 오래 드시는 약이 아닙니다.

영국 NICE 섬망 지침(CG103)은 말로 진정시키는 방법이 효과가 없을 때 단기간(보통 1주 이하) 할로페리돌 투여를 고려하고, 가장 낮은 적정 용량으로 시작하라고 권고합니다.

약이 섬망 자체를 줄여 줄까요? 결과는 기대와 달랐습니다. 2018년 MIND-USA 연구는 중환자실 섬망 환자를 무작위로 나눴습니다. 할로페리돌, 지프라시돈, 위약(가짜 약)을 비교했죠.

섬망·혼수 없이 지낸 날수에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약은 ’위험한 순간’을 넘기는 도구입니다. 섬망을 빨리 끝내는 약은 아닙니다.

자주 거론되는 약, 장단점 비교

약 종류흔한 예주로 쓰이는 상황주의점
정형 항정신병약할로페리돌심한 흥분·환각으로 위험할 때근육 굳음·떨림(추체외로 증상)
비정형 항정신병약쿠에티아핀 등의료진이 진정 효과까지 고려할 때졸림, 일어설 때 어지럼
벤조디아제핀로라제팜 등알코올 금단 섬망 같은 특수 상황일반 섬망은 오히려 악화 가능

파킨슨병이나 루이소체 치매(환시와 몸 굳음이 함께 오는 치매)가 있으면 더 조심합니다. 이런 분들은 항정신병약에 특히 민감합니다. NICE 지침도 신중하게 쓰거나 쓰지 말라고 안내합니다.

장기 복용의 위험도 있습니다. 2005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치매 노인에게 비정형 항정신병약을 쓴 임상 자료를 분석했습니다. 사망률이 4.5%로 위약군 2.6%의 약 1.7배였습니다. 이후 경고 문구가 붙었죠.

그래서 퇴원할 때 “이 약, 계속 드셔야 하나요?“를 여쭤보셔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진짜입니다. 섬망을 ‘부르는’ 약이 집 약상자에 있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섬망을 부르는 약이 집에 있다고요?

있습니다. 미국노인병학회 Beers 기준(2023년 개정)은 섬망 위험이 있는 노인이 피해야 할 약을 따로 정해 두었습니다. 항콜린 작용 약, 벤조디아제핀, 졸피뎀 같은 수면제, 스테로이드가 대표적입니다. 감기약·수면유도제에 숨어 있기도 합니다.

미국노인병학회(AGS)는 Beers 기준에서 섬망이 있거나 위험이 높은 노인에게 항콜린제, 벤조디아제핀, 비벤조디아제핀계 수면제 사용을 피하라고 권고합니다.

국내에도 장치가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DUR(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은 처방 단계에서 ‘노인주의’ 성분을 알려 줍니다. 다만 약국에서 직접 사는 일반의약품은 빠지기 쉽습니다.

약 종류흔히 들어 있는 곳
1세대 항히스타민(디펜히드라민, 클로르페니라민)종합감기약, 비염약, 일반 수면유도제
벤조디아제핀(알프라졸람, 디아제팜 등)신경안정제, 일부 수면제
졸피뎀 계열수면제
항콜린 작용 약일부 과민성 방광약, 아미트리프틸린 같은 삼환계 항우울제
스테로이드관절·천식·피부 염증 치료용 알약·주사

병원을 여러 곳 다니시면 약이 겹치기 쉽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다제약물 관리사업은 전문가가 복용 약 전체를 함께 점검하는 서비스입니다. 약 이름이 낯설다면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안전나라에서 성분과 주의사항을 조회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당부가 있습니다. 집에서 약을 임의로 끊지 마세요. 벤조디아제핀은 갑자기 중단하면 금단 증상이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단계는 의료진과 ‘함께’ 정리하는 방법입니다.

진료실에는 무엇을 들고 가고, 무엇을 물어야 할까요?

드시는 약 전부를 봉투째 가져가세요. 처방약, 약국 일반의약품, 건강기능식품까지 포함입니다. 증상이 시작된 시점과 그 전후로 바뀐 약을 적어 가면 원인 찾기가 훨씬 빨라집니다.

챙겨 갈 것

의료진께 여쭐 질문 4가지

  1. 섬망 원인으로 의심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2. 지금 드시는 약 중 줄이거나 바꿀 약이 있나요?
  3. 진정 약을 쓴다면 언제까지 쓰나요?
  4. 퇴원 뒤에도 이 약을 계속 드셔야 하나요?

이럴 땐 바로 119·응급실

섬망이 지나간 뒤에도 살펴볼 것이 있나요?

원인이 해결되면 대부분 며칠에서 몇 주에 걸쳐 회복됩니다. 다만 일부는 혼란이 더 오래 남습니다. 퇴원 뒤에도 기억력·판단력 변화를 지켜보고, 외래에서 다시 평가받으시길 권합니다.

섬망을 겪은 노인은 이후 인지 저하 위험이 높다는 연구가 여러 건 보고됐습니다. 그래서 회복 뒤 인지검사 한 번이 의미가 있습니다. 가까운 치매안심센터에서는 만 60세 이상이면 무료 선별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치매안심센터 무료 검사

다음 입원 때도 미리 알려 두세요. “지난번 입원 때 섬망이 있었다”는 한 줄이 예방 조치를 앞당깁니다.


이 글은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 영국 NICE 지침, 미국노인병학회 Beers 기준 등 공개 자료를 기반으로 정리되었습니다. 개인의 진단과 처방은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입원 중 쓴 진정제, 퇴원 후에도 계속 먹어야 하나요?

섬망 때 쓰는 항정신병약은 보통 1주 이내 단기 사용이 원칙입니다. 퇴원 처방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있으니 중단 시점을 의료진께 확인하세요. 임의로 끊기보다 처방한 의사와 상의해 정리하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Q

수면제를 오래 드시던 분인데 섬망이 왔어요. 바로 끊어도 되나요?

벤조디아제핀이나 졸피뎀 계열은 갑자기 끊으면 불면·불안 같은 금단 증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섬망 원인으로 의심되더라도 의료진과 상의해 단계적으로 줄이는 방식을 택하세요.

Q

섬망은 어느 과에서 진료받나요?

입원 중이라면 담당 주치의에게 먼저 알리시면 됩니다. 필요하면 정신건강의학과나 신경과 협진이 이뤄집니다. 집에서 갑자기 시작됐고 의식이 처지거나 고열이 있으면 응급실로 가셔야 합니다.

Q

멜라토닌이 섬망 예방에 도움이 되나요?

섬망 예방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는 엇갈립니다. 국내에서 멜라토닌 서방형 제제는 55세 이상 불면증 단기 치료용 전문의약품으로, 섬망 예방 목적으로 허가된 약은 아닙니다. 복용을 원하시면 주치의와 먼저 상의하세요.

출처 및 인용

  1. [1]

    섬망은 갑자기 생기는 의식·주의력의 혼란으로, 하루 중에도 증상이 변동한다

    출처: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https://health.kdca.go.kr

  2. [2]

    처방 단계에서 노인주의 성분을 알리는 DUR(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 운영

    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https://www.hira.or.kr

  3. [3]

    여러 약을 복용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복용 약을 점검하는 다제약물 관리사업 운영

    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https://www.nhis.or.kr

  4. [4]

    의약품 성분·허가사항·사용상 주의사항 조회

    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안전나라, https://nedrug.mfds.go.kr

  5. [5]

    다중요소 중재로 입원 노인 섬망 발생률 15.0%에서 9.9%로 감소 (852명 대상)

    출처: Inouye SK et al., N Engl J Med 1999, https://pubmed.ncbi.nlm.nih.gov/10053175/

  6. [6]

    비중환자실 입원 환자에서 다중요소 중재의 섬망 발생 상대위험 0.69

    출처: Siddiqi N et al., Cochrane Database Syst Rev 2016, https://pubmed.ncbi.nlm.nih.gov/26967259/

  7. [7]

    중환자실 섬망 환자에서 할로페리돌·지프라시돈이 위약 대비 섬망·혼수 없는 날수를 의미 있게 바꾸지 못함

    출처: Girard TD et al., N Engl J Med 2018 (MIND-USA), https://pubmed.ncbi.nlm.nih.gov/30346242/

  8. [8]

    내과 병동 입원 환자 20-30% 섬망 발생, 할로페리돌은 단기간(보통 1주 이하) 최저 적정 용량 사용 권고

    출처: NICE Clinical Guideline CG103 Delirium, https://www.nice.org.uk/guidance/cg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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